- 겨울이라기에는 너무 따스한 봄날 같은
*이동정보 :
- 진주 -> 순천 -> 해남 -> 끝말(땅끝마을)
*이슈 :
- 남해 버스 여행
- 또라이 한세트
13년 여행 이후 일상을 살기 위해 찾아보던 직장이 잘 되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보다는 내가 할 줄 아는
내가 사랑하는것 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어느정도 현실에 타협한 결정을 내렸다.
3월 출근이 정해지고 시간이 한달여 남은상태에서 집에서 그냥 쉬기에는 아까운 잉여가 썩어날 것 같아 일단 집을 나서기로 했다.
뭘 할지는 모르겠고 일단 진주 부모님댁에 인사차 혼자 길을 나섰다.
삼일정도 쉬고... 한참 가족들과 이야기 하다보니 그사이 시큰둥 해진다. 떠날때가 되었다.
아침 부모님의 차를 타고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노선을 째려보다
어제 갑자기 생각난 해남
3년 전 즈음에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해서 제주행 배를 타려다가 태풍덕(?)에 이박삼일을 했던 "케이프 게스트하우스"
콜! 출발!
진주에서 버스로 해남 땅끝을 가기위해서는 두번을 갈아타야한다.
진주 --> 순천 --> 해남 --> 땅끝
진주에서 해남까지 버스시간이 딱딱 맞는다면 3시간 안 맞으면 기다리는 시간 1시간 추가
해남에 도착해서 땅끝마을 가는 버스 바로 타면 1시간.... 이동하다 죽겠다..
순천에 도착해서 해남가는 버스를 보니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배가 고프기는한데...
버스표를 구입하고(시간,좌석 미지정...완벽한 one day open Ticket)
터미널을 나서서 지도를 대충 보니 저 멀리 산위에 팔각정이 보인다
대충 한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으려니.... 밥과 커피의 시간과 교환하기로 하고 짐을 둘러맨다
순천교를 지나....
장대공원이라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
공원의 예쁜(?) 배전반을 구경하면서
죽도봉 이라는 야트막한 산을 올라섰다.
대나무가 있어서 죽도봉이라 불리우나 싶으다
길이 길지는 않지만 잠깐 산책삼아 다니기에는 딱 좋은 산길
저 높이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다니다 보니 시간이 좀 빡빡한 듯 하여 돌아오는길
점점 버스를 못 탈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1시 55분 차 인데... 아직 도착 못했는데... 50분이다...
헐떡 거리며 뛰어 갔더니 차 문 닫고 후진중~!!!!
뛰어가서 겨우 올라탄 버스
등줄기에는 땀이 흐르고 한참을 숨을고른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즐거운 인생에
이렇게 안될것 같았는데 될때는 엄청난 행복이리라
보성을 지나
장흥을 지나
어딘지도 모를 여러 터미널을 지나
해남에 도착했다.
아직...군내 버스를 타고 또 한시간을 가야 한다.
땅끝마을(이하 끝말)행 버스는 끝말 안쪽에 보길도나 근처 섬으로 가는 여객선항구에서 사람들을 부려 놓는다
버스에서 내릴때 몇몇 혼자인듯 한 사람들이 내려온다
저 중에서 나와 같은 숙소에 묵을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시간이 아니니.. 각자의 시간을 가질 시간
케이프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데 사장님은 당연히 알아보지 못하신다.
주의사항을 읽어보라는 말에 "예전에 묵었어서 기억나요" 라고 귀뜸을 하지만
케이프 호스트분은 예전과 같이 시크하다 ^^;;
방에 올라오니 아직 도착한 게스트는 없다. 먼저 가방을 침대에 던지고
순천 죽도봉에서 버스타느라 흘렸던 땀 덕분에 샤워부터 한판하고
중간에 길에서 팔던 짜가 버팔로 티셔츠로 갈아 입었다.
이제...뭘할까...
조금 있으니 남자 둘이 들어온다
급하다... 일몰찍으러 전망대에 간다고....
혼자 빈둥대기 싫어서 가방을 둘러매고 같이 나서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올랐다.
항상 그렇지만 그곳은 항상 그대로
변해가는것은 나
하지만 삼년으로는 그다지 변한게 없는것일까?
큰 감흥없이 지려는 해에 미련이라는 감정을 실어 보려고 노력 하지만
이미 너무 객관화 되어버린 감정은 바스락 거리기만 한다.
선량하게만 보이는 표정과
자신이 모르는것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다른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사용할 줄 아는 동생을 만났다.
땅끝에서 만난 남자
살면서 사람을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신혼첫날의 어색함과 파르르한 느낌과 비슷한것 같다
해남이라는 단어 자체는 아무 의미를 가지지 않지만
여행을 떠나고 싶거나 떠나온 사람은 이 단어에 다른 의미를 채색한다.
그리고 그 의미에 감정을 실어 그 자리에 서 있거나 서고싶어 하는것이 아닐까
알 지 못하는 사람의 익명성과, 같은 여행자라는 공감대는 유대를 만들고
빠르게 자신을 드러내게 도와주며
대화의 기쁨을 선사한다.
그래서 초심자의 설레임은
다시 맛보기 힘든 첫 여행의 즐거움과 같다.
이사진의 이름을 "두근 두근" |
저녁을 뭘 먹나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해물탕과 소주로 저녁을 하고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맥주를 한잔하면서 다른 게스트들도 초대해서 왁자지껄 시간을 보내 본다.
11시..이제 문을 닫을 시간
우리방 다섯은 아직 달아오른 감정을 억지로 눌러 버릴 마음이 없다.
한잔 마시고...또 마시고....단체 사진찍어보고...
나는 이 친구들 나이때 그냥 회사 다니고 아이키우는 생각만 하고 살아서
저 사람들의 머리속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별반 다를 것 있겠느냐 싶다
잘 모르겠고...할것은 많고....바라는것도 많고...안되는것도 많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표정이 살아 있는 사람들
감독을 꿈꾸며 카메라 근처에 서있을 친구
한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가고
나는 지쳐 잠에 골아떨어졌고
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른 사람들은 해남의 찬 밤바람을 가르며 뛰쳐 나갔다.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지만 땅끝 선착장 까지 갔을때
더 달려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갑자기 추워졌을 것이고
그래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겠지
뛰쳐나간 열정이 부러웠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불편함 보다 지금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좋았던
그런 하루가 지나갔다.
2020년의 봄~딱 6년이 지난 시점에서 여행후기 잘 읽었습니다 ^^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