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하지만 좀 쌀쌀했던.... 아침에는 목도리를 두르고 걸었다
*이동정보 :
- 산티아고까지 446.4Km
Hornillos del Camino - Arroyo San Bol(5.7Km) - Hontanas(5Km) - Castrojeriz(9.7Km) (총 20.4Km)
*이슈 :
- 다시 우리들만의 시간으로
- 문닫은 산볼 알베르게
-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
06:00 부스럭 거리는 순례자의 출발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부르고스를 지나 점점 사람들은 새벽부터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 보다는 아침의 여유를 찾아가는것 같다.
사람들도 젊은 친구들도 여럿 있지만 나이있는 중후반이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점점더 차분해지고 있다.
어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어떨런지... 주방에 내려가서 냄비에 물을 한냄비 끓여놓는다.
아침에 더러 커피를 마시려고 뜨거운 물을 찾는 순례자들이 있다.
물을 끓여놓으면 누군가 와서 두리번 거리며 써도 되냐고 물어볼때
"originally yours!"(니꺼야) 라고 하며 같이 낄낄거리며 웃을때가 좋다.
커피한잔을 들고 계단을 올라 알베르게 앞 성당처마 아래에서 하늘을 본다.
싸늘한 날씨.....
어쩐지 좀 스산한 느낌까지 들기도 하지만 다행이 비가 올것 같지는 않다.
해가 떠오르는 스페인 |
한국인은 역시 밥심!!! 이지만.... 오븐만 있는관계로 오늘아침에 밥은 패쓰....
(어제 밥하느라 너무 고생했다 -.-;;)
빵과 비상식량 비슷한것으로 아침을 때우고 출발
겸이는 뭘 주어도 잘 먹는 편이지만 역시 "맛있게" 먹는것과 "때우는" 식사의 차이는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
가다가 햄버거 하나 사줘야겠다 (어쩌다보니 점심에 피자먹었다)
알베르게 앞 물받는곳..역시나 닭이 있다. |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시라고...가다가 쉬다보면 또 볼껀데 궂이 우리 속도에 맞추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들과 같이 걸으면 예민씨의 예민한 감정이 자꾸 나를 불편하게 한다.
아픔이 많은 사람일까..... 아니면 그냥 그런걸까.... 더 궁금해 하기도 불편하다
나이도 한참 많은 내가 품어 주면 될것같기도 한데 묘한 가시같은것이 있고... 상대방의 거리를 두는 대화방법에 살짝 귀찮은 감정
먼저그들을 보내고 오늘은 우리만의 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까미노의 닭은 종교적이다. ^^ |
원래 이 이야기는 전설같은 것인데 앞서 지나온 Santo domingo del La Calzda(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마을의 이야기 이다.
http://yckwon75.blogspot.kr/2013/10/camino-day141024-santa-maria-albergeu.html
중세 때 독일에서 온 순례자가족이 산토 도밍고의 한 여관에 묵었는데 이때 여관의 하녀가 그 가족의 아들을 좋아하게 되었지
그런데 그사람을 유혹하지 못하자 앙심을 품고 여관의 은잔을 숨겨놓고는 아들이 도둑질을 했다고 고발을 한거야
그렇게 그 아들은 사형을 언도 받았고 교수형에 쳐해졌고 본보기로 마을나무에 방치된체 버렸다고해
부부는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안은채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의 밧줄을 풀어주려고 마을로 왔고 아들에게 가보니 아들이 아직 살아있는거야
그래서 영주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아들을 풀어달라고 했는데
영주가 그 말을 듣고
"당신 아들이 살아있다면 지금 먹고 있는 이 닭도 살아있겠구나!!"
라고 말하자 식탁위에 구워져있던 닭이 벌떡일어나 홰를 치며 노래를 했다고 해
ㅋㅋ... 말도 안되는 설화 이지만 이 이야기에서 아들이 살아 있었던 이유는 산토도밍고의 성인이 아들의 발을 받치고 있었다는 전설..
그 이후로 기적을 상징하는 닭이 스페인의 성당에 있게 되었고
한국에도 가끔 성당에 보면 닭 모양이 성당 첨탑이나 풍향계같은 곳에 보이는 이유도 그것이라고 한다
마을을 벗어나자 전형적인 까미노길(시골스럽고...한적하고...현대 문명에서 박리된...)이 이어졌다.
오늘은 걸으면서 내가 자라온 이야기를 했다.
얼마전에도 한번 이야기 했었지만 오늘은 좀더 디테일한...
할아버지가 이혼하고 아빠가 서울에 올라와서 살게 되었던 이야기... 교회사택에서의 시간
자유롭게 살던 내가 눈치와 종교적 가치관에 얽매이게 되었던
너무나 마음대로 자랐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어리석고 나쁜 아이로 보였었던지
돈을 훔치고 물건을 훔치다 걸렸던 이야기
좀도둑 질이 마지막 이였던 훔치지 않은 돈 때문에 아침부터 매타작을 당했던 이야기
나를 그렇게 때리다가는 신방(목사들이 주마다 신도들의 집에 방문해서 예배를 보는)을 간다가 나갔다 와서는 또 ....
만져 보지도 않은 돈을 어디다 숨겼느냐며 때려대는대 매에는 장사없다는 말을 아빠는 어렸을때 알았다고 ...ㅋㅋㅋ
이런저런 내 이야기...
할머니 할아버지 뒷담화...
아직도 모르는 그들에 대한 나의 감정
니가 나를 언젠가(글쎄....) 사랑하게 된다면 내가 궁금해 질 것이고 그때 쯤이면 지금 이 시간의 기억은 편린으로 남아 있겠지만
이런 시간을 같이 했었다는 그 기억만으로라도 남았으면 좋겠다고
어제 내렸던 비와 아침의 기온 탓으로 아직 풀에는 이슬이나 물기가 잔뜩 있어서 어디 앉기도 편하지 않지만...
이젠 슬슬 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대충 퍼질러 앉아 쉬는 정도는 되어가는것 같다.
지평선이란 이런것... |
지평선 앞에 서서 |
걸어가다 까미노 푯말이 있는 아래 누군가 신발을 올려 놓고 갔다.
들어서 보니 밑창이 거의 달아 없어졌고 앞은 터져서 마지막에는 발가락이 땅에 닿았을 듯 한 신발이다.
어머나!!....캠프라인 등산화다....
우리나라 메이커 아닌가???? 외국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한국인이 신었던 신발이라고 치기로 했다.
이정도면 신고 산티아고에 갔다가 돌아오다가 이곳에서 더이상 신을 수 없어서 버려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소설을 쓰면서
이 신발의 주인이 한국에 있다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누군가의 발을 보호해주던....정말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나 할까? |
날이 좀 선선하지만...목도리는좀....무던한녀석 |
파노라마...왼쪽이 가는길 우측이 걸어온길.....지평선만 보이는 환상적인 |
이...이거슨....해바라기라고 불리우던....그것 |
이렇게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참고로 14년 7월에 까미노에 다시 올랐던 까미노친구의 사진을 보면 이 해바라기는 한때 이랬었다는.....
|
황량하기까지 느껴지는 지평선과 수확이 끝난 밀밭을 뒤로 하며 앞으로 걸어간다.
잠시 일(?)을 보고 겸이뒤를 따라가다가 사진을 찍었다.
어느사이 길을 걷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기다리지 않고 그냥 걸어가는 걸로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 졌다.
혼자 걸어가는 것도 하루에 가끔은 괜찮고
뻘쭘하니 곁에 서있어 봐야 길만 늦어지니...
뒤에 따라가는 사람은 아무래도 발걸음이 빨라 진다는
중간 쉬는곳에서 민찬을 만났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오늘 가는길 가운데 있는 산볼이라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전설의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에 한번 들렀다가 가기로 한다.
이 산볼이라는 마을은 어느날인가 흔적도 없이 사람들이 사라지고 마을 이름과 터는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서 전설로만 남았다는데
전염병때문에 사람들이 떠났다는 말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알 수 없는 일이고...
출발하고 얼마 안되는 이곳의 알베르게에 호감을 가진이유는 이곳의 밤 하늘이 기가 막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이다.
앞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차도 없고 도시도 없어서 밤이면 하늘에 은하수뿐 만 아니라 정말 쏟아지는듯 한 밤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글을 읽었다.
물론 스페인의 밤하늘은 대도시가 아니라면 언제나 밝고 엄청나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그것보다 더 훌륭하다고 하니 한번쯤 봐보고 싶었다는...
십자가 옆 돌무더기에 앉아서 쉬는사이 뒤따라 오던 순례자들이 와서 웅성웅성~ |
까미노를 걸으며 찍은 사진에는 유독 십자가가 많다...어쩔 수 없다... 워낙 종교적인 길이 아니던가
누구에게는 자신이 믿는 종교적 가치로 다가올것이고
나처럼 종교적 기준이 모호한 사람이나 종교에 대한 관념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표지 이자 상징물 처럼 다가 온다
3월 부터 10월까지 운영한다는 말을 들어서 혹시나 문을 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입구를 판자로 막아놓았다....운영기간이 끝났거나...여하간 산볼에서 하루 묵고 싶었던 생각은 접어야 할듯...
혼자왔다면 알베르게 처마 아래에서 노숙이라도 한번 해 보려 해봤을 지 도 모르겠다
밖에는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정원이라고 해야 하나? 풍경이 아름다운 알베르게였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이는 낮에 이곳에 앉아서 맥주 한잔 해보고 싶다....
생장에서 출발후 중간중간 계속 만나던 청년이 겸이에게 말을 걸었다. |
약간 당황해하며 나를 바라보지만 무시! 나중에는 짧게 짧게 이야기를 하더라는 |
나중에 필요하면 하면 될꺼야
원래 공부라는건 힘든건데 그걸 억지로 잘 하기란 어른들도 쉽지 않은걸
무책임한 부모라고 욕먹을 지 모르지만 난 너에게 공부라는 잣대는 들이밀고 싶지는 않다.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관념과 개념에 대한 구분 그리고 사념화 시킨 너의 가치가 만들어지길 원한다.
말장난 같이 보일 지 모르는 이 말들을 나중에 길게길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살면서 그런사람을 아직 못만났거든...
그냥 돈벌고 먹고 살고.... 그런 이야기가 중요한 인생에 있어서 한없는 외로움이 있다
너에게 내 외로움을 구재받고 싶은 마음이 일 부 있을것이야....
한여름이라면 한번쯤 뛰어들었을 지 도 모를
알베르게 바로 옆에는 지하수가 나오고 있다
같이 있던 청년의 엄마의 말로는 이곳이 순례자들의 발이 아플때 담그고 쉬면 좋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하루에 겨우 20Km 정도를 걸어오는 나조차도 발의 물집과 하루종일 발이 아프다
그것보다 훨씬 길게 걸어가는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
하루종일 뜨거운 발을 이 시원한 물에 담그면 이 물이 어찌 신기방기한 샘이라고 말 하지 안을 수 있을까
전설은 그렇게 만들어지나 보다
처음 발이 아프고 힘들었을때 걸을 때 마다 아픈 발에만 신경을 쓰다가 하루 이틀 지나고 이제는 그 아픔이 익숙해져서 그냥 그정도 아픔이 당연한 지금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살면서 아픔을 극복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사는건 저주이고 힘들고 외롭고 괘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 힘든 와중에 한번씩의 즐거움이 행복이 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것임을 자꾸 잊으며 산다고
힘든 인생이기에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잘 해 줄 때 느끼는 행복을 삶의 중심에 두는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픔은 극복을 하는것이 아니라 익숙해 지는것인데
극복...결국을 그것을 잊으려는 헛된 노력때문에 사는건 더 복잡하고 힘들어진다고
아직은 아픔 이라는 말에 대한 관념만 있는 나이라 이해 할 리가 없겠다
하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내가 해주고자 하는것은
살아가면서 그런일이 다가왔을때 이전에 들었던 몇 마디중 한 두개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화산암이 많다... 그 틈에서 자나고 있는 풀....생명력 |
잠시휴식중...달려가는 자전거 |
쉬었으니 또 걸어간다
5Km를 한시간 반 정도 걸려서 걸어왔다.... 양호하다.
마을의 입구
스페인의 평야지대인 메세타의 마을들의 특징이라면
끝없는 지평선을 걸어가다 약간 솟아 오른 언덕이 있다면 그곳이 마을이고
혼타나스처럼 계곡처럼 되어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마을이 있다.
이런 분지형태라면 물도 구하기 쉽고 바람이나 자연속에서의 어려움에 도움이 될 듯 한데 사실 가끔 언덕 위에 마을들을 보면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을지 좀 걱정도 되더라는
바깥의 T 자 모양은 이 근방에 오면 목걸이나 장식품의 문양으로도 많이 사용되는데
이곳 유명한 수도회의 문양이라고 한다. (처음에 보고 이건뭔가 했었다는)
오늘 가는 길에 있는 산 안톤(San Anton) 수도원의 문양인데
1095년 프랑스에서 창리됩된 안토니오 수도회 기사단이 괴저병(나병)으로 유럽이 초토화 되고 있을때 치료법을 알아내어 유럼 전역(400여곳)에 병원을 만들었고
옛날의 병원은 수도원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병원이라고 하지 않고 수도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재미있는것이 우리가 매일 가서 묵어가는 알베르게의 주인을 호스피텔라노 라고 부르는 이유도
예전에는 수도원 같은 곳에서 순례자들이 잠을 청하곤 했기 때문에
수도원의 수도자는 의사와 같은 역할 을 했었고 그래서 아직도 알베르게의 운영자들을 호스피텔라노라고 부른다는
산 안톤 수도회는 동양적인 우주생성론을 따르는데 Tau(그리스어로 알파벳 T)라는 표식이 있는 검은색 승려복을 입고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근방에는 T 라고 만들어진 여러 문양들이 있다.
창고로 쓰는것 같은데 몇백년 된 집을 저렇게 그냥 유지 한다. |
혼타나스의 거리를 걸어가다 까미노 바로 옆의 바에서 겸이는 아이스크림 나는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잠시 쉬어간다
떡본김에 재사라고.... 앉은 김에 피자하나를 시켜놓고 점심을 먹는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 "올라~"
맛나게 먹으라며 손을 흔들며 열심히들 걸어간다.
시간은 12시쯤 되었다...
다음마을인 까스트로제리즈(Castrojeriz)까지는 약 10Km
우리 걸음으로 4시간 정도 걸린다고 치면 4시나 되어야 도착이다....
어쩔까 하다가 다음마을까지 가보기로 하자
마을을 벗어나 좌우로 둔덕이 있는 계곡 같은 길을 걸어다가 만난 옛 건물의 잔해
성벽일까???? 파수대????
잠시 올라가서 이리 저리 둘러보아도 뭔지를 잘 모르겠다 성벽치고는 이거 너무 생뚱맞게 높은데...
겸이랑 구시렁거리며 서 있으니 미국에서 온 아저씨 하나도 올라와서 뭔지 아냐고 물어보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ㅋㅋ
셋이 같이 구시렁 거리다가 모르겠다고 포기하고 돌아서 다시 길을 나선다
어느덧 오후의 대화 주제는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로 통일 되고 있다.
이때 쯤 되면 점심으로 먹은 빵이나 그런것 따위는 이미 소화가 다 된 상태이고
도착해서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가 겸이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항이다.
도착이 늦을 것 같으니 피곤하면 메뉴(순례자 메뉴, 10유로 정도에 전,본,후 식으로 나온다)로 먹자고
넌 당연히 고기를 먹겠지? 나는 오늘은 닭을 먹겠어!
뭐.... 이런 대화
이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답답해 하지 않는다. 이 길이 좋다. |
아까 이야기한 산 안토니오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아치가 보인다.
말했듯이 수도원은 전염병 병원 역할을 했기 때문에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지어졌고 까미노에서도 수도원으로 가보기 위해서는 왼쪽으로 한참 들어가야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아치에서 가이드북의 내용을 읽어보며 옛날에는 카톨릭이 나쁜짓도 많이 했지만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도 참 많았다는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순례자들이 늦게 이곳을 지나다가 이곳에서 쉬어가곤 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도로가 없었던 옛날에는 이 길 위에 누워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며 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아치를 지나다 보면 이렇게 두개의 안으로 파인 구멍이 있다
옛날에는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순례자를 위해 음식을 넣어 두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순례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쪽지로 남기고 지나간다.
앞에 서서 한참을 보고 있는데
겸이가 나를 부른다
익숙한 한글로 쓰여진 쪽지 현아씨의 글이다. 이렇게 또 만나는 구나
겸이도 얼마전 같이 걸었던 누나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길을 나서 걸으며 한참을 현아씨 이야기를 한다.
이제 4Km 정도 남았다.
저 멀리 언덕으로 오늘의 도착지인 까쓰트로제리즈가 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 고문을 즐긴다.... 조금씩 변태가 되어가고 있는 아빠와 아들...
간만에 겸이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찍어봤다.
가방왼쪽에는 슬리퍼 위에는 아까 싸늘할때 두르고 다니던 스카프
목에는 2유로주고 샀던 목걸이....
조금은 들어간 뱃살...
30만원짜리 고글은 일어버리고 부르고스에서 급하게 구입한 3만원짜리 썬글라스...
20일 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닌데....뭔가 달라진 느낌이다.
동영상에서 외로워서 온사람은 없다! 라고 단정하는 부분이 있는데...
내 맨탈이 쓰레기라 그런거니 불쌍하게 보아주시길... ^^
그냥 동영상 녹화하다가 요 몇일 만났던 사람들과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면서 조금 실망했던 기분이 남아 있다보니 말을 좀 쉽게 했던...
부르고스를 지나 꽤나 먼 길에 다다르니 사람들도 많이 줄어든것 같고
비수기라 특히나..
이 시기에 이곳에 온 사람들은 왜 이길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워낙 외국인들이 "한국사람들이 까미노에 왜 이렇게 많이오냐" 라는 질문들도 하고
듣고보니 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하게되더란다...
그냥... "한국에서 사는게 힘들어서" "제주도 올레길 영향" "대한항공 광고 덕분" 등등...몇가지 시나리오를 써본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을 담벼락에 있는 지도를 보니 전체에서 딱 반정도 된다.
이제 산티아고 까지 446Km 남았고...
가이드 북도 오늘로 책의 딱 중간(내 가이드 북은 책을 중간에 잘라서 들고 다니게 되어 있다) 부분으로 이제 앞 부분은 버릴까 아니면 가방 아래에 넣어 둘까 고민을 해야 한다.
반..... 시작이 반..... 이제 그럼 다 온건가???
마을로 들어서서 알베르게 찾는데 고생좀 했다
가이드북에는 네개나 되는 알베르게가 있는데 한곳을 빼고는 문을 다 닫았다 -.-;;
언덕길을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 왔는데 숙소가 보이지 않는.....아...빡시다...
결국 찾아온 알베르게!!! 널려있는 빨래를 보니 얼마나 기쁜지!!!!
일층에는 자전거 보관소와 뭔가 너른 회의공간 같은 곳이 있는데
10월 말은 까미노의 비수기 인것이 숙소에서 느껴진다 ^^
체크인을 하려니 우리가 마지막이다... 뒤로 한자리 있다는 ㅋㅋ
워낙 알베르게가 문을 다 닫아서 이곳은 만원사례
나중에는 침대가 없어서 숙소안에 매트리스만 깔고 그 위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도착해서 잠시 해가 보이길래 침낭을 널고 빨래를 돌리고 씯고.... 바쁘게 정리를 하고 가게에 가서 음료수라도 먹자는 말에 알베르게 아래로 내려왔다...
어머나?? 웬 태극기가 하나 둥실 떠있다.
젊은 청년이 배낭위에 태극기를 두르고 길 위에서 두리번 거리며 어찌할지 고민하는 중...
아... 아마도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어서 고민중인가 보다 싶어서 인사를 나누었다(나중에 피니스테레에서 같이 마나고 한국에서도 만나게 된다)
지금 시간이 이미 5시를 넘어가는데.... 다음마을인 베가 는 여기서 10Km
밝은 얼굴로 "어쩔 수 없죠 뭐 열심히 가보려구요!!"
멋지다.... 대다나다!! 훌륭한 한국의 청년이십니다.
아쉽게 떠나보내고 겸이를 대리고 작은 용품점에서 잠바를 하나 사서 입혔다(요즘 아침날씨가 너무 춥다...나는 견딜만 한대... 겸이는 좀 아닌듯 해서 )
나도 전에 산 다닐때 신던 등산양말을 들고 왔더니 그사이 구멍이 나버린 -.-;; 양말과 잠바해서 50유로 ( 7만 5천원 뜨억!!) 어쩌겠어.... 추운데...
먼저 도착해 있던 미찬과 같이 밥을 먹을까 하다가 그냥 우리끼리 먹는걸로....
아까 아래쪽에 보아놨던 괜찮아 보이던 레스토랑으로 갔다
6시 30분.... 저녁은 7시 부터 된다고 하는데....어쩔까 하다가 그냥 와인 한잔을 시키고 바에 앉았다
피곤하고...배고픈 겸이
앉아 있자니 주문을 받아서 들어가고 조금 더 있자니 알베르게의 순례자들 중 일부도 이곳으로 밥을 먹으로 왔다.
난 외국인들이 음식 주문을 할때 외 그리 깐깐한지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 알았다.... 같은 음식이름이더라도 들어가는건 동내마다 지 맘대로.... ㅋㅋ
베지테리언의 경우에는 훨씬 심할듯
겸이는 전식으로 파스타를 주문했다 겸이놈 우리가 먹는 치즈 듬뿍 면발 가득 파스타를 기대 했다가 풀때기 잔뜩 파스타를 보더니 약간 실망 ㅋㅋ
나는 역시나 믹스트 셀러드... 실패 확률이 가장 낮다.
들어가는게 거의 비슷한....거의 표준화 된 음식 중 하나
만약 스프를 시킨다면 조심하시라.... 콩스프를 시켰는데 되기 비계가 들어간 스프가 나올 수 있다... ㅋㅋ
난 오늘은 닭으로 달려봅니다
와인은 한병통째로 주길래 혼자 반병넘게 처묵 처묵!!!
잘 먹고 후식은 겸이는 아이스크림 나는 후르츠(과일이라고 생각했다...하기는)
겸이는 봉지째 아이스크림 하나가 접시에 담겨 나왔고 (가게에서 파는)
나는 오랜지 하나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어이쿠야!!! ㅋㅋ 후르츠가 이렇게 나오는거임???
오해 마시라 다른곳에서 후르츠 주문하면 썰어서 나오는 곳 도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주문할때 복잡하게 물어 볼 수 밖에 없는것을 이해 했다는
호스텔을 겸한 레스토랑 겸 바 인 "엘 메종" (메종은 선술집을 말한다)
주인이 욕심이 좀 많다 ㅋㅋㅋ
이렇게 배를 채우고 언덕길을 올라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올라가는길 와인한병과 과자부스러기...그리고 내일 아침에 먹을것들을 들고 리셉션에 앉아서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독일에서 왔다는 청년도 끼었는데 한국사람들끼리 이야기 해서 좀 뻘쭘한듯 해서 말을 걸었더니
어떻게 왔냐, 아들이냐, 어떻게 올 생각을 했느냐, 대다나다, ....
영어도 못하는데 어려운 질문이 많아서 그냥 패쓰~!
사람 좋아 보이던 그녀석....이름이 역시나 기억 안난다.
식당에서 반병 올라와서 반병.... 오늘 좀 과음했다.
겸이도 한잔 줬더니 얼굴이 발그래 하다
오늘은 걸으면서 참 말을 많이 했다...
목이 아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
내일은 또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매일 같은 것 같은 시간을 반복하니 그 반복안에 작은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즐거움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
행복이라는 것을 나이 40에 조금씩 이해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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